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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곰탱이
  • 14-02-11 23:06
  • 4,984

[역사쏙쏙 Part 3] 추사 김정희 1(과천 추사박물관)

 
 
과천에는 추사 김정희 선생님을 기리는 "추사박물관"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추사 김정희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합니다.
 
 

 
 
 
 
 
멋진 박물관이 우리는 반겨줍니다. 이곳에는 추사선생님의 생애를 비롯하여 멋진 작품들 그리고
 
과지초당을 만날 수 있게 한답니다.
 
 
 
 
추사 는 1786년(정조1)에 김노경과 기계 유씨의 큰 아들로 예산에서 태어났답니다. 경주 김씨의
 
명문가였고 추사의 증조할아버지인 김한신은 영조임금의 딸인 화순옹주의 남편이지요. 추사의
 
집안에는 자손이 무척 귀했나 봅니다. 화순옹주와 김한신과의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김이주를 양자로 들였습니다. 김이주는 추사의 할아버지이구요.  김이주의 첫째 아들이 김노영
 
둘째 아들이 김노경입니다. 바로 김노경이란 분이 추사의 친아버님이시지요.
 
 
 
 
하지만 추사의 큰아버지에게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추사가 8세가 되던 해에 큰아버지인 김노영
 
의 양자로 가게 되었답니다. 이후 추사 역시도 자녀가 없었기 때문에 양자를 들이게 되는데 김
 
상우와 김상무입니다. 증조할아버지, 큰아버지, 자신에 이르기까지 양자를 들이는 정말 자손이
 
귀한 집안이었던 것이지요.
 
 
 
 
여덟살에 친가족과 떨어져 살아야하는 추사의 심정을 알려주는 편지가 있답니다.
 
 
" 삼가살피지 못했습니다만 한여름에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사모하는 마음 그지없습니다.
 
소자는 어른을 모시고 책읽기에 한결 같이 편안하오니 다행입니다.  ...중략...  아우 명희와 어
 
린 여동생은 잘 있는지요? 제대로 갖추지 못했습니다만 살펴주십시요. 아뢰어 올립니다. 아들
 
정희올림 "
 
 
지금의 여덟살의 아이들의 모습과는 무척 다르지요. 어른스러움이 뭍어나는 편지입니다.
 
 
 
 
 

 
사진을 살펴보면 가운데 글이 8살 추사의 글이고 여백에 이곳저곳에 쓴 것이 아버지의 답장이랍
 
니다.
 
 
 
 
추사는 24세에 그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바로 연경(지금의 북경)에
 
가게 된 것이지요. 당시 청나라의 수도인 연경은 추사에게 새로운 문물을 볼 수 있는 신세계같은
 
곳이었습니다. 짧게 수학했지만 스승인 박제가는 연경을 3번이나 왕래한 인재였고 그의 영향을
 
받은 추사는 연경에 가기를 꿈꿔왔던 것입니다.
 
 
 
 
아버지인 김노경이 동지부사로 연경에 가게 되자 자제군관(연수생)의 자격으로 드디어 연경으로
 
가게 됩니다. 지금처럼 교통이 좋지 않은 조선시대에 의주에서 연경까지 걸린시간은 40여일이나
 
됩니다. 1600km가 넘는 기나긴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지요. 1809년 12월 24일 연경에 도착하
 
게 됩니다.
 
 
 
 
연경에 머무른 시간은 40여일이었고 이곳에서 추사에게 큰 스승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옹
 
방강과 완원이지요. 옹방강은 당시 많은 제자를 거느린 청나라의 고증학의 대학자였습니다.
 
78세에 25세의 어린 추사를 만난 그는 해박하고 총명한 추사를 제자로 삼았습니다. 8만권 가까이
 
가지고 있는 많은 서적과 서화, 탁본 등을 추사에게 보여주며 추사가 성장 할 수 있도록 도와주였
 
습니다.
 
 
 
 
 

 
 
 
옹방강과 추사는 말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글로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는데요. 글로 이야기하는
 
것을  '필담'이라고 합니다. 옹방강과 추사의 필담서가 남아있지요.
 
 
 
 
 
또한 완원은 청나라의 관리면서 고증학, 금석학, 경학 등 대단한 관료학자였답니다. 이 두명의 스
 
승이 추사에게는 일생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지요. 40여일의 짦은 연경생활이었지만 추사
 
는 많은 청나라 학자와 교류를 했고 조선으로 가야하는 추사를 위해 9명의 청나라의 학자들이 모
 
추사와의 이별을 아쉬워했답니다. 주학년이 '전별도'란 그림으로 이 송별모임을 그려놓았지요.
 
 
 
 
조선으로 돌아온 후에도 추사는 청나라의 학자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조선의 학자와 연경의 학자
 
를 연결시켜주는 가교역할을 했습니다.
 
 
 
 
 
추사는 금석학을 크게 발전시켰습니다. 금석학이란 쇠붙이나 돌에 새겨진 그림과 글씨를 연구하
 
는 학문입니다. 무학대사가 세운비석으로 알고 있던 북한산비석을 진흥왕이  한강 이북까지 영
 
토를 확장하고 세운 "북한산 진흥왕순수비"라는 것을 밝혀냈으며 황초령 진흥왕 순수비를 고증하
 
고 보존하는데도 노력하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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